• 부활하신 예수님(요21:1-14)
  • 조회 수: 1056, 2013.06.23 17:02:15
  • 부활절 아침을 맞이하여 성도여러분들의 가정과 심령에 부활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상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종교는 죽음 이후의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말합니다 . 지난 2-3년간에는 중, 고등 학생들 사이에 환생 설이 유행병처럼 퍼져나갔고 시중 서점에는 환생에 관한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으며 엄청나게 많이  팔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인간은 내세의 소망을 가진 존재임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은 사람이 선과 공을 쌓아서 부처가 되면 죽음다음에 사람으로 환생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짐승이나 곤충으로 환생한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이미 묵은 교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예수님만이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내세의 영원한 세계를 우리에게 증거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전에도 죽음을 겪지 않고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예수님 사역하시는 3년 동안에 죽은지 나흘이 된 나사로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그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이요 한편  죽은 음에 부활이 있음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내신 두 가지의 큰 권능이 있다면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빈 무덤을 남겨 놓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죽으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그리고 시간과 공간세계에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생이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으로 끝났다면 기독교는 결코 부활의 종교, 승리의 종교가 될 수 없고 슬픔과 절망의 종교로 끝났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첫째,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시체의 다리를 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숨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군병들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편의 강도는 다리를 꺾었습니다, 왜냐하면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대용어로 말하면 확인사살입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하여 장사지냈습니다, 죽지 않는 예수를 빌라도가 내어주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학설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환상 설입니다 둘째는 기절 설입니다 셋째는 제자도적 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학설은 학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시 로마정부는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막고 인봉하고 군병들이 교대로 지켰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빈 무덤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여인들이 새벽에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가면서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내어 주겠느냐?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이미 돌이 굴러내어져 있었습니다, 그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빈 무덤이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천사가 하나는 예수님이 뉘이셨던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마포는 개켜있었습니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너희가 찾는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 2,000년이 지나는 가운데에도 이 빈 무덤을  부인하는 학설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넷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났으며 부활의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적어도 열 한번이나 나타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담대히 나아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신학자 월리암 바클레이는 "예수님의 부활은 환상도 아니며, 상상도 아니고, 영적인 환각도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우리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갈릴리 해변에 나타나서 제자들에게 조반을 주셨고 자신도 잡수셨다“ 고 했습니다

     

    1 .실망과 좌절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기쁘고 즐겁고 승리하는 날보다는 절망과 좌절과 실의에 빠진 날들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이 병행하여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만 보았던 제자들은  엄청난 허탈감과 좌절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할 수 없이 3년 전의 삶의 터전인 갈릴리 어장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 2절을 보면 적어도 7명쯤은 된 것 같습니다 3절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 줄 알지 못하였더라”  제자들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빈 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옵니다  이제는 그 빈 그물을 가지고 허탈감속에 싸여 항구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 바로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 좌절과 실망, 실의에 빠져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철저하게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게 되었을지라도, 빈 그물을 끌어올리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셨던 그분이 저와 여러분들을 찾아오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24:13이하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다가 그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시자 실의에 빠져 고향인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고 성경을 가르쳐 주셨고 음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밝혀 부활의 예수님을 보게 했습니다, 그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 예루살렘의 마가요한의 다락방으로 갔습니다 거기11제자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았노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눅24:33-35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왕상19:21을 보면 아합과 싸우던 엘리야 선지자는 로데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서 떡과 물을 공급하시고 40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보내신 것을 압니다

    창16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처  사라는 잉태치 못하고 그의 첩 하갈이 잉태하였습니다 그러자 하갈이 그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의  허락을 얻고 하갈을 학대했습니다, 그러자 하갈이 도망하였습니다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창16:7-12 “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가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 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절 “ 이러므로 그 샘을 브헬라해로이 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사이에 있더라”

    그후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과 함께 놀면서 이삭을 괴롭혔더니 사라가 화가 났습니다  창21장을 보면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바란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가져온 물도 떡도 떨어졌습니다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이 죽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살 한 바탕쯤(화살이 날아가는 거리)가서 방성대곡하며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창21:17-19 “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너는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이처럼 하나님은 실패와 좌절과 절망 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다른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절망과 좌절 가운데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오셔서 용기와 소망을 주십니다.

     

    소련의 저항작가인 솔제니친이 [집단 수용소의 하루]를 그린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절망에 빠져서 쓰러져 있는 그 곳에 단 한 사람만이 눈을 빛내며 밤마다 잠자리에서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수용소의 생활 중에도 절망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밤마다 성경구절이 적혀있는 종이 한 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절망과 좌절에 싸이지 않고 새로운 생기를 가지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절망과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셔서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십니다.

     

    2.일상생활 속에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부활하신 주님은 특별한 상황 중에만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그리고 학교와 삶의 현장에 직접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첫째/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겉옷을 벗고 밤을 새며 고기를 잡는 베드로의 삶의 현장에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떠나서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내 생각대로 그물을 던져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실패의 결과뿐입니다. 바로 그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졌더니 큰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시장한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이시기 위해서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을 구워놓으시고 기다리셨습니다. 제자들의 베고픈 사정을 아셨습니다, 아마 밤새 많은 e고기를 잡았더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기가 잡히지 않는 밤이었으므로 더 배고팠을 는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있으면 점심때가 훨씬 지나도 배고픈 줄 모릅니다, 그러나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점심때가 안되었는데도 배가 고프더라고요

    주님은 제자들의 시장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떡을 준비하시고 생선을 구워놓으신 것입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떡이 12 바구니였던 기적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은 배고픈 군중들의 형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만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굶주림을 아시고, 배고픔을 아시며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서 떡과 생선을 구우시고 조반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미국의 어느 가정에 장미꽃을 키우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장미꽃에 물을 주거나 장미를 돌볼 때마다 휘파람을 크게 불었습니다. 한 번은 이웃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휘파람을 불며 장미를 가꾸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이웃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가 초대를 받아서 온 이웃에게 자기의 아내를 소개했는데 그 아내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앞을 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자기가 여기 가까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렇게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하는 일 가운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함께 계시면서 축복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3, 제자들의 사역을 회복시켰습니다

    15절 이하를 보면 조반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거듭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조반을 먹이신 다음 새로운 소명과 새로운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 그것은 새로운 사역이라기보다는 이전에 처음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았을 때에 주셨던 사역입니다

    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물고기 잡아 생계를 꾸려가던 베드로에게 전혀 다른 사역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는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지난날에 체험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을 주님으로부터 배웠고 보았고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주님이 보이지 않자 그는 곧 실망하고 옛날의 직업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의 사명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나간 날들의 삶 속에서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역이 없습니까? 혹 잊어버리고 지나쳐온 것들이 없습니까? 새로운 회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에베소교회와 같이 처음 사랑의 회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처음에 가졌던 그 열심과 믿음을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식어버렸습니까? 회복해야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사명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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