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신앙인(고전15:1-11)
  • 조회 수: 409, 2013.07.10 07:21:32
  •  집을 세울 때는 우선 터를 잘 마련해야합니다.-도로, 햇빛, 습기, 공기 등이 좋은 곳이야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도 터가 없으면 건축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일찍이 터가 마련되어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기독교의 내용상의 터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의 터입니다. 육신으로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가 건축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터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의 터가 있습니다. 부활의 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부활의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인 것입니다.  

    봄은 자연의 부활을 가져오는 계절입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무가지나 풀이 봄의 따스한 햇살이 비취면 파아란 싹을 내어밀고 순식간에 천지가 푸른생명,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충만한 부활의 장면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있어서 만은 이것이 예외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상은 인간의 생각 속에는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 사상인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는 본문말씀에도 세가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경이 오래 전부터 부활에 대하여 증거해 왔습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4절)라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예언된 데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두 번쩨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한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드러냄으로 증거하신 것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어 나시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5-8절).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친히 부활하신 몸을 보이심으로 부활신앙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세 번쩨는, 사도 바울의 변화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핍팍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는 본문에도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8절),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팍하였으므로'(9절)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므로 변화를 받아 부활소망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숨걸고 증거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이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 것입니까? 

    1. 첫쩨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가슴에 소망영성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상황을 절망으로 평가했습니다. 인간이 언제부터 절망하게 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존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와 그 자손들의 영혼이 즉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세 가지 절망상태에 빠졌습니다. 먼저, 영적인 절망입니다. 영혼이 죽어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서 구원에 대한 영적 절망에 처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죽음 앞에서의 절망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으니 인간의 생명은 한정되어 살다가 병들고 노쇠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죽음의 절망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환경적인 절망에 부딪쳤습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이 땅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수 있는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절망을 당신의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모든 사망과 절망의 세력을 다 정복, 부활하심으로 소망의 부활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죄악과 저주와 모든 절망을 청산하고 부활하신 것으로,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용서와 의, 삶의 목적과 의를 부활시켜 주셨으며 영생의 부활을 가져다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 절망적인 존재였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내일의 소망, 천국의 소망,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살수 있는 존재로 소망을 부활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한 소망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2. 둘쩨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의 영성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을 꾀어 타락시킴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미움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하와를 원망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죄를 짓게 했소'하와는 또 뱀을 원망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부부의 갈등이 생긱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어느 가정이나 부부의 갈등이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마귀가 심어놓은 갈등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는 비극이 다가왔습니다. 첫 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벧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밭에서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형이 아우를 죽인  비극이 일어난 이후로 인류 속에는 미움이 꽉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오늘날까지 인간의 역사는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 간, 부족과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 인간의 역사인 것입니다. 인간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평화했고 또 평화할 동안에는 전쟁준비를 하고, 그후에는 또 전쟁을 했습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이 생겨난 이후로 전쟁이 없는 때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미움을 예수님이 오셔서 짊어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인, 유대종교지도자들, 일반 군중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로부터도 미움을 받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온 인류의 미움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이 미움을 멸하시고 위대한 사랑의 화신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을 보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와도 대결하지 않고 크신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감사하고 극복하며 사랑으로 부활하신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우리 마움속에 부은 바 됨으로 우리의 영혼 속이 사랑 가운데서 기쁨으로 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을 연결하는 가교가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사람을 지극한 사랑으로 사랑해 주시고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사랑으로 연결시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면 받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남편을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게 됩니다. 친구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과 자연을 사랑으로 연결시킵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지와 환경의 오염을 통해 스스로의 생명을 자멸로 이끌고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으니 자연과 화해하고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새 한마리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죽이면 우리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사랑이 충만해져야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3. 세쩨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마음 속에 참된 믿음의 영성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당시 십자가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눈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토록 비참한 저주의 십자가를 목격하면서 모든 사람이 죄의 저주와 형벌 앞에서 몸서리치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인간 구원에 대한 믿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십자가를 목격한 후 심망감과 좌절감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고백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인정받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던 나사렛 예수가 우리를 구원할 줄 알았는데 빌라도에게 심판받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으니 우리의 구원의 소망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구원의 소망을 다 빼앗아버리고 믿음을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에수님의 부활은 인간 구원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을 다시 부활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은 십자가에서 종말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인, 제자들은 반쪽짜리 믿음으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십자가는 재해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실패도, 패배도,절망도 아니요, 우리를 구원하는 위대한 대속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으로 재해석된 것입니다. 이로서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온전한 참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죄사함의 믿음이 부활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믿음이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영생 천국의 믿음이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십자가 고난을 통해 대속하신 은혜의 보증이 되셔서 모든 믿는 자의 가슴속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주께서 부활하사 당신의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값주고 사신 

    은혜가 반드시 집행하도록 지금 보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이 그것을 보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야 말로 우리의 깨어진 믿음을 다시 부활시켜 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흔들리던 믿음을 다시 확고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젊은 시절 방황하던 때부터 일평생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랑하는 아들 어거시틴에게 마지막 말을 하는 장면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는 선교하느라 아프리카에 묻혔다. 나도 그 옆에 묻히기를 원했었다. 거기에는 내 무덤도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아들아 나를 아무데나 묻어다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무 데나 묻어도 상관이 없단다. 어떻게 장례를 치르던 그것도 상관이 없단다. 이제 내가 곧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올 것이니깐 말이야"하고는 운명을 했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를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내게 죽으라시든 살라시든 아무려면 어떻나. 내가 천구갈텐데! 
    가난하게 살라시든, 부요하게 살라 시든 어떻나. 내가 천국가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살텐데!
    십자가를 지라시던, 원수까지 사랑하라시나 어떻나. 내가 천국가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지낼텐데? 이것이 부활신앙인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어떤 사건이나 환경 속에서 참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참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참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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