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편인가 왼편인가(눅 23:39-43) [고난주간]
  • 2021.12.22 11:07:23


  •  33절 말씀을 봉독합니다.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 
    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금부터 2천여년전에 갈보리 언 
    덕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날은 인류 역사가운 
    데서 가장 비통한 날이고 또 모든 인생들이 무릎을 꿇고 자기의 죄를 회개했어야할 참회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고 좌우에 행악자들의 두 십자가가 세 
    워졌습니다.  본문에는 행악자들이라고 했는데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강도들이라고 했 
    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강도가 오른편이고 다른 강도는 왼편이라는 말은 성경에 밝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자들 태반이 오른편 강도가 회개했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인생 
    은 신령한 의미에서 여기 소개되어있는 강도인생입니다.  따라서 오른편인가 왼편인가 선택 
    의 문제를 저마다 안고 있습니다.  왼편인가 오른편인가 이 시간 말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고난주일을 지키는 이 시간 세 개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은혜를 사모코자 합니다.

     첫째,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요1:14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온갖 멸시 
    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강도취급 
    을 받았습니다.  두 강도의 십자가 그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은 이러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경륜을 완성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가 어떤 십자 
    가입니까?  두 가지 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대속의 십자가입니 
    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견딜 수 없어 하시면서 절규하 
    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심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 
    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절규하시고 마침내는 "다 이루었다" 고통 가운데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셨습니다.  왜 이렇게 처참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까?  나의 모든 
    죄 바로 나 같은 죄, 주홍같이 붉고 먹장같이 검은 죄를 다 용서, 속량, 대속하실려고 그리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는 마음으로 고난주간에 십자가 지신 주님을 바라볼 때 뜻 
    있는 인생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고백이 무엇입 
    니까?  "예수 믿고 죄 씻음 받았네"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 왠말인가 왠은혠가.. 또 
    우리의 찬송이 무엇입니까?  ♬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왜 십자가가 무한 영광일까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나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 
    력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문필가 루 오레스가 써놓은 「벤허」의 내용에서 더러 
    보았지요.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든 비통한 사람들에게 이적이 일어나고 문둥병자가 다 깨 
    끗이 낫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 오른편 강도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어쩌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때입니다.  이 
    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에 오른편 강도에게 낙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 
    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니까 죽은 
    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귀머거리가 듣고, 심지어 
    는 "바람아 잠잠하라" 바람이 다 잠잠해질 수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기쁨이요, 소망이요,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능력이시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예수 
    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주일에 갈보리산상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 
    라보지 않는다면 언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면서 우리가 기도할 것이 무엇입 
    니까?  십자가 아래의 그 무리들처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 
    하라"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까?  당장 내려와서 내 병을 고쳐 달라, 내 사업이 잘 되고 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고집스러운 기도만을 해야 할까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의 어리석은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서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것 아닙니다.  비록 강도 같은 
    추잡한 죄인이라도 '그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금 저 갈보리 언덕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것이고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난주 
    일을 지키는 성도여 "하나님이여, 나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 
    마 왼편 강도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를 전혀 모를줄 알았을 것입니다.  또 자기의 죄를 끝 
    까지 숨길 수도 있다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을 때에 아마 "나는 무죄요, 
    나는 죄가 없소, 내가 언제 그 죄를 범했다는 말입니까" 도리어 호통을 쳤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 집행장의 십자가에 달렸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 
    를 숨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범죄한 아담을 보십시오.  수풀 사이에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아담아 네가 지금 무엇하고 있느냐" 문책하기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말 
    합니다.  "네 죄를 반드시 내가 찾아내리라" 또 말합니다.  "네 죄가 지금 문지방에 엎드렸 
    느니라"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모래 속에 시체를 묻었습니다.  발각되지 않을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니까 모래알이 흩어지고 까만 시체가 모습을 드러내 
    지 않았습니까.  모세의 죄가 들통이 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강도인생인 우리 모두가 너 
    의 죄 그만두고 나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리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주소 
    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도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다윗도 "나는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리고 바울이 어찌했습니까? 
    우리 모두는 성자 바울이라고 존경하고 흠모하는데 그는 고백할 때에 "나는 죄인 가운데 괴 
    수로소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어린양 
    재물이 되신 것입니다.  많은 무신론, 실존주의자들이 갈보리를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올라 
    간 그들은 양편 강도의 십자가만 보고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난 주일을 지키면서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미쳐 보지 못하는 실 
    수를 범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둘째, 왼편 강도의 십자가입니다. 
    두 행악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같은 강도들이라는 점이요 또 하나는 그들 
    이 유죄 판결을 받아 잠시후면 십자가형으로 죽을 목숨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그들이 천국인가 지옥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점입니다.  인생은 결단하는대로 결단됩니 
    다.  오른편이냐 왼편이냐 선택에 따라서 인생은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왼편 강도의 
    마음이 영영 열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도덕적 감각이 너무 무디어져 있습니다.  좀처럼 자 
    기의 죄, 실수, 오점을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있습니다.  남을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비방한다는 말은 
    문법적으로 미완료형인데 다시 말하면 왼편 강도는 십자가를 끌고 갈보리에 올라갈 때부터 
    서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모두도 비방받을 때 
    도 많습니다.  예수 믿는 형제들도 나를 비방할 때가 많이 있고, 불신자들도 터무니없는 내 
    용으로 도전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비방을 받지 않았습니까.  예수님도 비방을 받았는 
    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비방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들이 비방했습니다.  로마군병들이 조롱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도 예수님 
    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찌했습니까?  입을 열지 아니했습니다.  시종일관 침 
    묵을 지키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한 마디 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용 
    서해주옵소서" 너무도 고마우신 주님이십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그런 기도입니 
    다.  그리고 또 한 마디 하셨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왼편 강도는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죽어라고 해결하 
    지 아니합니다.  그렇다면 이 강도의 죄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별 수 없습니다.  히 
    9:27이 답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무 
    서운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로 갔을까요?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지옥에 
    떨어진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마25:30이 답합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 
    이 있으리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결코 죄의 차이가 아닙니다.  결코 학문 
    의 유무, 빈부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차이입니다.  오른편 강도는 예수님을 믿 
    었고 왼편 강도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또 그것은 회개의 차이입니다.  오른편 강 
    도는 자기의 죄를 회개했고, 왼편 강도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했습니다.  여기에서 주 
    는 교훈이 있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만이 회개한다.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은 회개하지 아 
    니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고난주간이 시작되는데 오늘 회개하기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한 주간 내내 "주여 나 같은 죄인"하면서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 나 같은 죄 
    인 살리신 .. 주님이 너무 고마우십니다.  내가 죄를 회개하면 다 주님이 용서해주십니다. 
    빈 손들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오른편 강도의 십자가입니다. 
    본문 40-41절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 
    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마땅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 
    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오른편 강도는 이처럼 예수님의 
    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옳다, 그에게는 죄가 없다.  그야말로 많은 
    위인들이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했지만 지금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 강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증언하고 있다는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십자가 형벌을 받 
    는 것 당연한 줄로 깨달았고 인자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 
    면서 구원을 주실 분으로 믿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른편 강도는 무거운 입을 열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 같은 것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얼마나 간절한 기도입 
    니까.  얼마나 심각한 생명의 불똥이 튀는 기둥입니까.  인생은 어차피 강도인생입니다.  그 
    러니까 죄 없는 인생은 아예 없습니다.  회개한 성도의 죄를 주님이 감당하신다고 했습니다. 
    사53:16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그에게 예수님께 담당 
    시키셨도다.  벧전2:24이 증언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즉 예수님의 몸으로 우 
    리의 죄를 담당 시키셨도다고 했고, 사44:22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 
    기 '도말한다'는 말은 갚아야 될 빚이 일만 달란트인데 그 빚 문서를 깨끗이 다 지워 가지 
    고 통째로 탕감해 주셨다는 의미의 도말입니다.  그래서 시103:12인데 동이 서에서 먼 것같 
    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했고, 사38:17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고 했습니다.  ♬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처음에는 오른편 강도도 
    예수님을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막15:32 "함께 십자가에 목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늘의 낙원 문이 그에게 활짝 열린 것입 
    니다.  그리고 강도인 내가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 
    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멘" 하시고 즉석 구원을 주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여기 낙원은 영원한 에덴동산, 파라다이스 곧 천국 
    을 뜻합니다.  ♬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오른편 강도에게 천국의 문이 활짝 
    열렸고 그 천국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강도의 눈 앞에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숨이 넘어가 
    기 직전인데 갑자기 오른편 강도에게 없었던 성경적인 기독론이 생겨나고 없었던 성경적인 
    구원론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소리없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순간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무엇이 강도의 마음을 이토록 변화시켰고 무엇이 강도의 가치관을 이토록 변 
    화시켜 놓았습니까.  물론 보이지 아니하게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그리하신 것입니다.  아마 
    강도들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 가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서 얼굴을 찡그리고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면서 불평을 하고 고 
    함을 지르며 호통을 치다시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누구를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묵묵하게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올라갑니다.  그 입에서 불평이 나온적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그 얼굴은 인자했고 사랑이 넘쳤고 천사처럼 빛났습니 
    다.  고통 가운데 갈보리를 오르면서 뒤따라 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도리어 위로하고 격려를 했습니다.  손바 
    닥에 못을 박고 옆구리에 창을 꽂고 그래서 물과 피가 다 쏟아지는데도 도리어 친근한 어조 
    로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중보기도를 하신 
    우리 주님.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오른편 강도의 가슴이 짜릿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입니다.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영안이 열리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면 
    풍문에 떠돌던 그대로 저 예수가 메시야 구세주일거야.." 그리고 비록 강도이지만 유대인인 
    지라 이사야 53장의 주인공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암송하다시피한 말이 있었을 것 
    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나 
    같은 죄인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고난주일 
    을 지키는 우리 모두를 향하여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오른편인가 왼편인가?" 묻고 계신다 
    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생명인가 사망인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마지막날에 내가 양은 오른편 
    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서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 
    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회 
    개하고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오른편 강도의 경우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가 오히려 그를 회 
    개시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에게 십자가가 없었더면 영영 회개하지 아니하고 인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주석가 뱅겔의 말입니다.  "누구든지 평안한 침상에서는 회개하지 
    아니한다" 그렇습니다.  고통을 당한 성도가 계십니까?  괴로움을 당한 성도가 계십니까? 
    고난, 슬픔, 큰 환난을 당한 성도가 계십니까?  그것이 도리어 회개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죄 많은 강도 사형집행 직전의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 
    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참회하면서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즉석에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축복하셨습니다.  낙원이 무엇입니까?  회개할 때 즉시 이루어지는 하나 
    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십니다.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 
    에 보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후6:2이 무엇입니까.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구원시각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언제나 회개하는 
    지금입니다.  그래서 오른편 강도는 아침에 마귀와 함께 조반을 먹었는데 저녁에는 예수님 
    과 함께 낙원에서 석반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른편과 왼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또 회개가 무엇입니까?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이 고 
    난주일에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탕감받는 
    이시간이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설교                                                        1999.  3.  28 
                                 오른편인가 왼편인가 
                                       (눅23:39-43)                 변한규 목사

      지금부터 2천여년전에 갈보리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 
    가에 달리신 그날은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가장 비통한 날이고 또 모든 인생들이 무릎을 꿇고 
    자기의 죄를 회개했어야할 참회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고 좌 
    우에 행악자들의 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회개한 강도가 오른편이고 다른 강도는 왼편이 
    라는 말은 성경에 밝혀있지 않지만 학자들 태반이 오른편 강도가 회개했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첫째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강도취급을 받 
    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경륜을 완성하셨습니다.  그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심 
    정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고통 가운데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 바로 나의 주홍같이 붉고 먹장같이 검은 죄를 다 용서, 
    속량, 대속하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고난주간에 십자가 지신 주님을 바라볼 때 뜻 
    있는 인생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입니다.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의 도가 미련한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나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 
    다. 예수님은 능력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기쁨이요, 소망이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십니다. 십자가 아래의 무리들은 내 병을 고쳐 달라, 내 사업이 잘 되고 내 문제 
    를 해결해 달라고 고집스러운 기도를 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리석은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서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것 아닙니다. '그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금 저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 
    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강도인생인 우리 모두는 내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 
    가에서 우리를 위한 어린양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둘째 왼편 강도의 십자가 
      두 행악자의 공통점은 강도요 유죄 판결을 받아 십자가형으로 죽을 목숨들이라는 점입니 
    다. 인생은 결단하는대로 결단됩니다. 오른편이냐 왼편이냐 선택에 따라서 인생은 결정됩니 
    다. 그런데 왼편 강도의 마음이 영영 열리지를 않고 있습니다. 도덕적 감각이 너무 무디어져 
    있습니다. 좀처럼 자기의 죄, 실수, 오점을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비방했 
    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남을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 
    사장들이 비방했고 로마군병들이 조롱했으며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도 비방했습니다. 예수 
    님이 우리의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비방을 받았는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비방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입을 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왼편 강도는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이 강도의 
    죄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무서운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입니다. 오른편 강도는 예수님을 믿었고 왼편 강도는 예수님을 믿지 아 
    니했습니다. 그것은 회개의 차이입니다. 오른편 강도는 자기의 죄를 회개했고, 왼편 강도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했습니다. 믿음있는 사람만이 회개합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되는데 
    오늘 회개하기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빈 손들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 오른편 강도의 십자가 
      오른편 강도는 이처럼 예수님의 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옳다, 그 
    에게는 죄가 없다. 인자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구원 
    을 주실 분으로 믿기를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입을 열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에 나 같은 것도 기억하여 주옵소서" 인생은 어차피 강도인생입니다. 죄 없는 인생은 아예 
    없습니다. 회개한 성도의 죄를 주님이 감당하신것입니다. 사53:16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 
    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사44:22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 하신다, 시103:12인데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사38:17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 오른편 강도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늘의 낙원 문이 그에게 활짝 열린 것입니다. 거듭나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즉석 구원을 주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는 소리없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순간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누구를 원 
    망하지 아니하고 묵묵하게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올라갑니다. 고통 가운데 갈보리를 오르 
    면서도 뒤따라 오는 여인들을 위로하고 격려를 했습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고 옆구리에 창 
    을 꽂고 그래서 물과 피가 다 쏟아지는데도 도리어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중보기도를 하신 우리 주님. 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오른편 강도의 가슴이 짜릿했을 것입니다. 비록 강도이지만 유대인인지라 이사야 53장 
    의 주인공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가 나 같은 죄인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고난주일을 지키는 우리 모두를 향하여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오른편인가 왼편인 
    가?" 생명인가 사망인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사랑하는 성도여, 이 고난주일에 내가 예수님 
    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탕감받는 이 시간이기를 예수 
    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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