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마가복음 15:16-27/ 나의 쓴 잔을 마시겠느냐? [고난주간 특새1]
  • 2013.03.23 18:30:16
  • 우리 교단에 이일호 목사님이 이스라엘 선교사로 계시는데 이 분이 제일 바쁠 때가 언제냐 하면 사순절 때라고 합니다. 사순절이 되면 많은 성지 여행자들이 찾아오는데 이들을 섬기는 일들로 하여 바쁘다는 것이죠. 특별히 사순절에는 빠지지 않고 가는 코스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십자가를 지시고 출발하신 곳, 이곳을 브라이도리온 이라고 합니다만 지금은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때가 때인지라 누구든 그 곳에만 가면 자연히 경건해 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인데 여기서부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던 언덕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에는 여러 가지 성지 여행자들이 기념할만한 장소들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에 눌리어 힘을 잃고 쓰러지신 곳들입니다.

     

    어떤 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곳과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에게 손수건을 드려 흐르는 땀과 피를 닦게 하였다는 곳... 이런 곳마다 수도원이 있거나 작은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기념지 중에서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간 곳을 기념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자들이 그 많은 코스 중에서 이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진 코스에 이르러서는 구레네 시몬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합니다. 주님이 가장 힘들어하시던 이 땅의 마지막 길에서 어찌됐든 가장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다투던 제자들... 특별히 야고보와 요한이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높은 자리를 청했을 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질문하셨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이것은 나와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들은 무엇이라 대답했습니까? 마가복음 10장 39절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어코 주님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모두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정말 주님이 힘겹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로 올라가실 때에는 그 자리에서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으니 그는 온 인류를 대신해서 예수님의 최후의 길을 조금이라도 곁에서 도운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했을망정 우리 모든 인류는 구레네 시몬에게 빚을 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쫓아 이 여행 코스를 따르는 여행자들로서는 구레네 시몬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그 질문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합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이 질문은 “너희들이 높은 자리를 탐낸다마는 정말 너희가 내가 받으려는 쓴 잔, 내가 받으려는 이 고난의 세례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더 쉬운 말로 “너희가 나와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느냐?” 이런 물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나 쉽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마실 쓴잔, 예수님이 받으실 세례... 이 의미를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고, 이해를 한 대답일까요?

     

    오늘 이 종려주일을 맞아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하려고 합니다. 이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물으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물음에 무엇이라 대답할 것입니까? 이 대답을 위해 깊이 헤아리며 성찬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찬에 앞서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진 결과는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그가 자발적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 15:21)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레네는 요즘 이집트 옆 리비아 땅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십자가를 지기는 했으나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만 그냥 '지나가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십자가를 멜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그가 지나가던 그 자리에서 주님은 쓰러지셨고,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죽으면 안 된다는 로마 군인들의 생각과 맞아 떨어져 그가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재수 없는 일로 여기지 않겠습니까?

     

    아마 처음에는 많은 불평과 원망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그 많은 구경꾼 중에 하필이면 자신이냐는 원망 섞인 불평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것은 그가 그동안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엄청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다면 구레네 시몬을 그 예수님의 지친 육신을 위해 온 인류를 대신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영광입니까? 그 외에도 그의 자녀들이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초대교회에서 그의 가정은 믿음의 명문가정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복만 받았을까요?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이 그 가정에 주어진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억지신앙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억지로라도 감당하게 될 때 거기서 오는 축복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고상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자기도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백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도 어떻게 보면 자기의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짐으로 오게 될 고난을 생각해 보니 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뜻이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주님도 억지로 심자가를 지셨다면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는 것을 그렇게 탓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억지로라도 그가 십자가를 짐으로 해서 그에게 어떤 복이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는 순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억지로라도 기도하고, 억지로라도 예배드리고,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고, 억지로라도 봉사하고.... 그러다가 보면 신앙에 눈이 뜨이고, 구레네 시몬과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신앙에 있어서 자유를 주면 안 됩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약을 먹이지 않습니까? 안 먹으면 죽으니까요.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저절로 놔 둬도 공부를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붙잡아서 공부를 시키잖아요. 공부는 그렇게 억지로 시키듯이 신앙도 그렇게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예배드리게 하고, 억지로라도 기도하고, 성경 읽게 하고... 이러면서 자녀들이 신앙의 가정을 이루고, 교회의 중직자가 되고, 부모의 뒤를 잇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에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을 만나서 그 교회 이야기를 쭉 들어보는데 참 감격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박기용 장로님이라고 계시는데 좌천동 가구골목에서 가구도 하시고, 양복점도 하시고 그랬어요. 이 장로님에게 딸 둘, 아들 둘이 있는데 자녀들이 다 잘 컸어요. 큰 딸이 저하고 동기이고, 나머지는 다 제 후배들인데 그 중에 막내아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감회가 새로워요. 다른 자녀들 보다 이 아들은 좀 방황을 많이 했어요. 교회도 잘 안 다니고... 그런데 장로님 내외분이 이 막내아들을 많이 야단쳤어요. 공부 못한다고 야단치지는 않았지만 교회 안 나가고 그러면 굉장히 야단을 쳤어요. 그래도 빗나가고, 빗나가고 그랬는데 아 이번에 장로로 피택 받았다고 하니까 제가 그.k 이야기를 듣고 참 감동이 되더라고요. 물론 다른 자녀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신앙으로 잘 컸어요. 박기용 장로님... 그 분... 어릴 때 저희들이 멋모르고 욕 많이 했어요. 교회에서 독재한다고... 저도 이 장로님으로부터 호통을 여러 번 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얼마나 멋있는 장로님이신지....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을 대신해서 막내아들을 딱 장로가 돼서 교회를 받들고....  보세요. 부모가 억지로라도 신앙을 다잡아 놓으니 커서 부모의 뒤를 이어 장로가 딱 돼서 자리를 잡잖아요.

     

    우리는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어려운 일은 다 내 몰라라 하는 세상에서 유쾌하게 ‘내가 하겠다’고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나에게 그 십자가가 주어지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내가 지겠습니다...’ 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순종을 통하여 큰 은혜와 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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