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마가복음 14:66-72/ 베드로의 부인 [고난주간 특새1]
  • 2013.03.26 17:48:09
  • 일본인 슈사꾸 엔도가 지은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한 신부가 일본의 신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여 주님을 배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선교사들의 일본 선교를 무산시키기 위해서 일본인 관리는 선교사에게 조건을 제시합니다. "네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을 밟으면 저 불쌍하게 고통당하는 일본인 신자들을 살려줄 것이지만, 끝까지 거절하면 너는 물론 저들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이 신부의 마음에 나 한 사람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저 불쌍한 사람들이 죽는 것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불쌍한 일본인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초상을 밟는 배교의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이 신부의 배교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믿다 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까지 이용당합니다. 그리고 후에는 진실한 신자들 중에서도 이 선교사의 배교로 말미암아 신앙에 등을 돌리고 맙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선교사로 말미암아 일본선교가 초토화된다는 그런 내용이 이 소설에 들어있습니다. 이 소설이 말하여주는 바는 정당한 진리는 절대로 어떤 타협의 산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은 이 고뇌에 찬 포루투칼 선교사의 배교에 비해 볼 때 참으로 비겁하고 추악하기까지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그 어떤 정당한 동기도 없었습니다. 단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이렇게 부끄럽고, 엄청난 부인을 한 것입니다. 이는 부인 정도가 아니라 배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나중에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여 자기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식의 대답을 합니다. 그렇게 용기 있는 베드로의 모습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너무나도 비겁하고, 겁쟁이 같은 베드로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베드로는 이렇게 된 것입니까? 지난 월요일 새벽에는 베드로의 실패에 대하여 기도 하지 않은 연고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기도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가서는 안 될 자리에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가야 할 자리, 가지 않아야 할 자리를 구분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김선운 목사님이라는 분은 우리 한국에서 미국 유학의 1세대에 해당되는 분입니다. 정성구 박사, 손봉호 복사 같은 분이 대 선배로 모시는 분이지요. 서울대학교를 나와 프린스톤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에서 이민1세대 목회를 하셨고, 프린스톤, 웨스트민스트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이름을 날린 분입니다. 이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또래의 아이들과 마음 놓고 놀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의 부친이 항상 감시하고 살피면서 ‘너는 이 동네의 아이들과 다르다. 이 동네의 아이들은 불신자들이니까 너에게 세속적이며 악한 영향력을 줄 것이다. 그러니 그들과는 어울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가르치며 삶을 통제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또래들이 말 하는 것, 추구하는 것이 저래서야 쓰겠나.... 하며 그들을 한 수준 낮게 보면서 먼 미래를 보며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분과 이 분의 부친이야말로 시편 1편을 몸소 실천한 분들이셨습니다.

     

    베드로의 잘못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그는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간 것이 그를 그렇게 죄 짓고, 비참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권속들과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그들과 같이 불을 쬐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아닌 척, 상관없는 척 하는 그의 처신이 결국은 그를 그렇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경계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자신의 존재를 경계선에 선 자라고 하였습니다. 폴 틸리히가 그랬나요? 저는 이 경계선에 선 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베드로가 이 경계선에 선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만은 주님과 함께 하겠노라.... 이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이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요. 조그마한 계집종의 말에 그만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나를 죄 짓게 만드는 사람들, 나를 죄 짓게 만드는 환경... 이런 것들을 반듯하게 잘 정리하고, 마음이 그리스도인이면 옷 입는 것, 말하는 것... 삶의 모든 태도.... 이런 것들이 나의 신앙고백을 바쳐줄만한 것이 되도록 잘 정리해야 베드로처럼 주님을 모른다고 어리석게 부인하는 죄를 짓지 않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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